#1. 어딘가에서 주운 글 조각 1
정신병원을 찾은 한 환자가 있었습니다. 그 환자는 매일 우산을 손에 들고 모퉁이에 가만히 쪼그려 앉아 있었죠. 그 이상한 행동은 모두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간호사가 환자에게 재차 이유를 물었지만 아무런 대답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모두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한 의사가 우산을 들고 환자를 따라 모퉁이에 쪼그려 앉았답니다. 두 사람이 그렇게 아무런 말 없이 쪼그려 않자 있기를 한 달. 그 길고도 조용한 시간을 함께한 끝에 드디어 환자가 입을 열었다는군요.
"저기...... 당신도 버섯인가요?"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된 이야기지만, 이건 그저 일부일 뿐. 뒷이야기는 이렇습니다.
환자의 물음에 의사는 대답을 했죠.
"네, 저도 버섯이에요."
그러고는 일어서서 한마디 더 건넸답니다.
"전 이만 가야겠습니다."
그러자 환자가 물었습니다.
"당신도 버섯이라면서 어떻게 걸을 수가 있죠?"
"버섯도 걸을 수 있어요."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병실로 돌아왔습니다.
이번엔 의사가 약을 꺼내 들었답니다.
"전 약을 먹어야겠습니다."
"당신은 버섯이라면서 왜 약을 먹는 거죠?"
"버섯도 약을 먹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자 환자는 의사를 따라 약을 먹었습니다.
이번엔 의사가 침대에 누워 이불을 가지런히 덮고 말했답니다.
"전 이만 자야겠습니다."
"당신은 버섯이라면서 왜 잠을 자려는 거죠?"
"버섯도 잠을 잘 수 있으니까요."
그러자 환자도 의사를 따라 잠을 청했습니다.
몇 달 후, 병원 치료에 내내 응하지 않던 '버섯'은 마침내 건강을 회복하고 퇴원할 수 있었답니다.
#2. 어딘가에서 주운 글 조각 2
꾸준히 사람을 만나고 부딪혀야 돼. 그래야 내 피해의식이 망상이었고 상대에게 실례였다는 걸 깨닫게 된다. 건강한 사고는 가만히 혼자 있는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3. 어딘가에서 주운 시 1
올여름의 할 일은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
느린 속도로 열리는 울음 한 송이
둥글고 오목한 돌의 표정을 한 천사가
뒹굴다 발에 채고
이제 빛을 거두어
땅 아래로 하나둘 걸어 들어가니
그늘은 둘이 울기 좋은 곳
고통을 축복하기에 좋은 곳
<여름의 할 일>, 김경인
#4. 어딘가에서 주운 시 2
꽃은 저마다 피는 계절이 다르다.
개나리는 개나리대로, 동백은 동백대로
자기가 피어야 하는 계절이 따로 있다.
꽃들도 저렇게 만개의 시기를 잘 알고 있는데
왜 그대들은 하나같이
초봄에 피어나지 못해 안달인가
그대 언젠가는 꽃을 피울 것이다.
다소 늦더라도 그대의 계절이 오면,
여느 꽃 못지않은 화려한 기개를
뽐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고개를 들라.
그대의 계절을 준비하자
<아프니까 청춘이다> 中, 김난도
#5. 어딘가에서 주운 시 3
욕조에 잠긴 나는 팔과 다리를 잃었습니다.
멸치들의 대화가 들렸습니다.
수족관에 갈치와 고등어는 모두 죽었답니다.
울음에서 어떻게 걸어 나가죠?
나는 늘 진심이 모자랐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입을 가리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내게서 비린내가 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두려웠습니다.
계단에서 미끄러질 때마다
앉아 있던 의자가 축축하게 젖어 있을 때마다
나를 의심했습니다.
입안에서 돋아나고 있는 짧은 가시와
아침이면 베갯잇에 수북이 쌓인 비늘들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바짝 마르고 싶은 심정으로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누군가 내 이름을 한 번만이라도 불러주었더라면
생선이 되는 일 따위는 없었을 텐데요.
기분은 왜 물 위에 뜨지 않죠?
멸치들은 모두 배수구로 빠져나가고
창밖으로 밤이 흘러넘쳤습니다.
물에 녹은 손금이 모르는 방향으로 뻗어나갔습니다.
누군가 나를 발견한다면 그는 희귀한 낚시꾼으로 불리게 될 테죠
몸은 하얗게 썩고 있지만
이제 막 생겨난 지느러미만은 빛나는
온몸을 진심으로 뒤덮은
옥상 냄새가 나는
날씨는 잊은
나는 다가오는 금요일 욕실에서 발견될 것이지만
생선에게 미래 따위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무구함과 소보로 _생선이라는 증거>, 임지은
#6. 명언 1
The first step to knowledge is to know that we are ignorant.
-Socrates(470-399 B.C.)
#7. 명언 2
I wish I had an answer for that, because I'm getting tired of answering that question.
-Yogi Berra
#8. 어딘가에서 주운 글 조각 3
우리는 그 배의 선장이 아님을,
그러나 우리는 그 배를 침몰시킬 힘이 있기에
그 누구보다도 신중히 행동해야 함을 기억한다.
<동물 축제 반대 축제> 선언문 中
#9. 어딘가에서 주운 시 4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사막>, 오르텅스 블루
나는 생선이라는 증거와 사막이라는 시 이 두 개를 엄청 좋아한다.
처음 읽었을 때 정말이지 소름이 돋고 나지막한 충격을 받았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임지은 시인의 시집을 꼭 한번 읽어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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