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종교 이야기나 좀 해보자.

예수는 왜 어린이 같아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했을까?

어떤 사람은
어린이가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것처럼
우리도 하느님 말씀 내지는 목사님이나 신부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한다.

10분간만 웃어주자.

어린이가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다고?

그런데 왜 주구장창,
부모님 말씀을 잘 들어야 착한 어린이라는 가르침을 아이들에게 펼칠까?

맞다.
아이들은 부모님 말씀을 결코 잘 듣지 않는다.
그래서 부모님은 혈압을 올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야 할 때가 많은 거다.

예수님이 이런 어린이를 언급하신 걸까?
그렇지 않다. 결코,

우리는 어린이의 특징 중 하나, 아주 강렬한 특징을
이승기가 나오는 CF에서 볼 수 있다.
순수한 오렌지로 만들었다는 CF에서
이승기의 동생으로 나오는 여자애는 줄기차게 묻는다.
왜?
라고.

어린이들은 가만 내버려두면
궁금해서건 아니면 시비를 걸 의향이건간에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엄마, 해는 왜 떠?
밥은 왜 먹어야 해?
학교는 왜 가?
아빠랑 엄마 몸은 왜 달라?
기타 등등.

이러한 아이들의 질문은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종교 역시 마찬가지이다.

세상 어떤 종교의 교리이건
'왜'라는 질문이 해당되지 않을 만큼 당연한 교리는 없다.

예수님은 왜 십자가에 달리셨나요?
왜 설교는 목사님이나 신부님만 하죠?
왜 헌금을 해야 하나요?
왜 교무금이나 십일조를 내야 하죠?
왜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야 해요?
왜?
왜?

종교에서 '왜'라는 질문이 빠지는 순간이 바로 종교의 타락의 순간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수많은 율법들이 존재했고,
그 율법들은 물론 사악한 규정은 아니었다.
다만,
바리사이나 사두가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 사제들은
그 율법이 '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고민을 싹 빼버렸다.

왜 십계명이 만들어졌지?
왜 주일을 지키라고 하셨지?
왜 부모님을 공경하라고 하셨지?
왜 안식일에는 아무것도 하면 안 되지?

이러한 '왜'라는 질문을 통해
그 율법이 하느님으로부터 왔을 당시의 하느님의 의도에 대해 파악하면
우리는 좀더 잘 그 율법을 지킬 수 있게 된다.

시키는 그대로만 하는 것은 노예,
그 이상을 자유롭게 해나가는 것은 자유인.

하느님께서 우리를 노예가 아닌 자유인으로 만드신 것은
바로 '왜'라는 질문을 통해
글자 그대로밖에 움직이지 못하는 로봇, 노예가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 적절히 움직일 수 있는 자유인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안식일에 밀밭을 지나다가 이삭을 뜯어먹은 사건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배고픈 사람이 이삭을 먹는 걸 보고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비난한다.
안식일엔 추수하지 말라는 규정 모르냐?

이 바보들은
왜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규정이 생겼는지를 알지 못한다.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다가,
안식일에 쉴 수 있는 자유를 누리게 되었음을
그 자유를 돈 많고 부유한 사람만이 누리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 노예, 그리고 사람이 아닌 말이나 소 같은 가축까지 함께 누리고,
그 쉽의 시간에 그러한 자유를 주신 하느님을 기억하며 보낼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를 누리며 쉬다가 배가 고프면
안식일이라 하더라도 그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이삭을 뜯어먹을 수도 있는 거다.
그건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의 추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얻고 이해한 자는
하느님의 율법을 좀더 원론적으로, 근본적으로 지킬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왜'라는 질문을 빼버리고 문자대로만 믿는 사람이 되어버리면
이젠 반대로 빠져나갈 구멍만 파고 있게 된다.
마치
성금요일에 금육재 지키라고 하자,
삼겹살을 포기하고 더 비싼 생선회를 먹으러 가는 인간들처럼 말이다.

아이들의 두뇌는 말랑말랑하며 자유롭다.
그래서 '왜'라는 질문이 나온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하느님이 '왜' 그렇게 만드시고 행하셨는지
끊임없이 물어야만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지 않을 수 있다.

끊임없이 하느님을 향해
그분이 '왜' 그렇게 하셨는지,
그분이 '왜' 그렇게 하라고 하셨는지를 물을 때에만
우리는 그분의 의도를 더 잘 알고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에도, 경제에도, 신앙에도,
'왜'라는 질문을
결코 내려놓지 않고 사는 삶

그것이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요구하시는 삶이다.
Posted by 작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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